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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가 없는 엄마

나는 모성애가 부족한 여자인 것 같다.
결혼전에도 아이들을 그닥 예뻐하는 편은 아니어서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물론 나는 나의 아이들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귀중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과의 여러문제에 부딪칠때마다 나는 나의 모성애를 의심하곤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웃고 아무리 힘들어도 다정해야지...하면서도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간혹 남편의 습관을 따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일때면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걸까. 이미 그 사람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니까?



아직도 내 머릿속에 딸에게 미안한 일이 두가지 있는데...
한번은 아이가 이제 3살정도 되었을때 남편이 또 연락없이 외박을 했던 날 아침이었다.
나는 밤새 잠도 못 자고 울고불다 아침이 되어 아이의 아침밥을 차려주려고 부엌에 있었다.
우리 딸은 신생아때부터 잘 울지도 않고 잠도 잘 자는 아이였는데 그날따라 아침부터 짜증을 부리며
안아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나는 잠도 못 자고 남편도 미워죽겠는데 밥은 해야겠고 아이는 울고 안아달라는데
그 얼굴에선 남편이 보이고...참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가 안아달라고 다리를 붙잡고 우는데 모르는 척 했다.
대략 30분 정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러면서 그렇게 말했다.
‘지 아빠를 닮아서 꼴도 보기 싫어’
아이는 어려서 못 알아들었을까? 아니...다시 생각해보면 다 알아 들었을 것 같다.
다른 건 몰라서 ‘너 싫어’하는 그 말투나 느낌은 자연스럽게 느끼지 않았을까...



또 한번은 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를 다닐때였다.
우리 딸은 소심한 편이다. 소심하지만 무엇이든 천천히 관찰하고 차근차근 해나가는 스타일인데
그때는 그런걸 잘 몰랐다.
다른 아이들처럼 방긋방긋 웃고 잘 따라주길 바랬지만 매번 문화센터를 갈때마다 울상이고
내 무릎위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집에 오곤 했다.
그날도 아이는 전과 같이 행동했다. 그건 변하지 않았다.
다만 나의 마음이 가시밭이었다. 전날 남편이 또 외박을 하고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깔깔거리며 웃는 다른 엄마, 아이들 사이에 울상이 된 아이를 안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울화통이 터져서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갔다.
거의 잡아채듯 아이를 화장실칸에 몰아넣고는 협박을 했다.
‘너 이런식으로 하면 놔두고 갈거야. 너때문에 오는거지, 나때문에 오는거니?’
그리고 엉덩이도 여러대 때렸다.
아이가 뭘 알겠는가. 문화센터라는 것도 모르는 아이가 자기때문에 오는건지 엄마때문에 오는건지 알게 뭐람.
순전히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오는 문화센터였는데 나는 모든 짜증의 원인을 아이에게 돌리고 있었다.




육아를 하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는 참 많았지만...
위의 두번은 생각할때마다 더욱 미안하다.
그리고 그날의 내 기분도 너무 생생하게 느껴진다.
남편을 향한 분노와 원망, 아이까지 있어서 도망갈수도 없다는 답답함.
내가 이런 남자를 남편으로 생각하고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 등등.


많은 여자들, 아니 엄마들을 보면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찌되었든 아이들을 더욱 보듬어 주고
아이들을 위해 뭐든 희생하는데 나는 내 감정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약한 아이들에게 감정보복을 하고 있었다.
아니 지금도 진행중이다.

어제는 연락없이 토요일에 나가 일요일 점심때 들어온 남편이 일언반구 아무말 없이 라면끓여 먹고 예능보면서 깔깔거리다가 코골고 자는 모습에
아이들에게 공부 좀 하라고 소리소리를 질렀다.
일요일인데 공부는 무슨 공부. 아이들은 황당했겠지만 아무말 하지 않았다.
자기들도 이제는 분위기를 어느정도 아니까.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
올바른 가정을 보지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과연 올바른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내가 좀더 남편에게 살갑게 대했더라면 남편이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이 아닌 가정적인 사람이 되지 않았으려나...
어쩔때는 내가 다 잘못하고 내가 못나서 이렇게 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문득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도 그런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못난 마누라, 못난 에미를 만나서 니들이 고생하는거야. 그러니 모든 잘못은 내가 짊어지고 희생해야지.
엄마는 그런 생각으로 지냈을까?

이혼을 하게 된다면 친권,양육권을 내가 가져오겠지만...가끔은 아무도 없이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할때마다 나는 나의 모성애를 의심하게 된다.
나는 정말 이기적이고 모성이 없는 여자인가보다.
가끔은 정말...다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
동굴 같은 곳에 혼자 들어가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