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친한 사람들보다 모르는 사람에게 나의 속내를 터놓는게 더 편하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것에 모두들 부담을 느낀다.
나도 내 속내를 터놓고 얘기할 사람이 필요한데 막상 만나서 술한잔 마시며 터놓고 얘기할 사람이 없다.
주변의 친한 사람들...물론 어느정도 나를 알지만 다 터놓고 얘기하기엔 누워서 침뱉는 꼴인것 같아 자꾸 말을 아끼게 된다.
물론 이렇게 인터넷상에서 이런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짓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답답하다.
나는 결혼식당일 부터 이혼을 꿈꿨었다.
하지만 흐지부지 끌려다니다시피 15년의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다 내가 못난 탓이겠지.
나는 어려서부터 술을 마시면 돌변하는 아버지 밑에서 컸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집안 물건을 부수고 엄마를 때리고 욕하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와 내동생은 때리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집안 집기들을 깨부수고 엄마를 때렸다.
엄마가 짐승처럼 울던 소리...엄마가 우는 모습을 나는 직접 본 적이 없다.
자다가 우당탕 소리나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깨어나서 본능적으로 그리고 습관적으로 책상밑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그냥 울었다.
울다 지쳐서 잠들면 어느새 조용해졌고 집안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나는 아버지와 이혼하지 않는 엄마가 처음에는 너무 싫었다. 그러다가 점점 엄마가 무능력해 보이고 미웠었다.
사춘기시절 가출이나 일탈행위를 하진 않았지만 엄마를 굉장히 무시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엄마에게 너무 미안하다.
엄마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수많은 밤을 울면서 보냈을까.
사춘기에 접어든 딸년마저 엄마를 무시할때 얼마나 서러웠을까.
나는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명랑했다.
외모는 어린시절부터 흰 피부와 큰 눈때문에 예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고 쾌활한 성격탓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했다.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나의 속이 썩어들어가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행복해보이고 싶었던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사람들에게 예쁘다, 착하다, 명랑하다 칭찬듣고 싶어서 손해보는 일이 생겨도 참고 화가 나도 웃었다.
쾌활하게 농담으로 받아치며 성희롱이든 비웃음이든 참아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예민하고 남의 눈치를 잘 보는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다. 밖에서는 호인인척 다정한척 모두 이해하는 척했지만 집에 돌아오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힘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짜증을 엄마에게 쏟아냈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아무튼 그런 내가 22살에 지금의 남편과 첫 연애를 했다.
나는 그때까지 아버지의 영향탓인지 남자가 싫고 무서웠었다.
소개팅이든 미팅이든 많이 나가긴 했지만 남자들이 또 만나자고 하면 무서워서 만나질 못 했다.
그러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나게 된 남편은 아이들을 참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길가다 꼬마들을 봐도 귀엽다~라고 꼭 이야기하고 자신의 조카들도 예뻐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래서 그때 ‘아, 이렇게 남의 아이들도 예뻐하는 사람이면 자신의 아이들은 더 예뻐하겠다.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아.’라고 착각을 하고 말았다.
5년이란 긴 연애를 하면서 우리는 여러번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했다.
그때당시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늘 남편의 연락두절과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 습관 때문이었다.
그때당시 내가 서울에서 3교대를 하며 간호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정도 데이트를 했었는데
가끔씩 남편은 연락두절이 되어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는다거나 적게는 10분 길게는 2시간씩 약속장소에 늦게 나타난곤 했다.
남편은 깜빡했다거나 어머니 심부름 다녀오느라 늦거나 했다며 미안해서 연락을 못 했다는 변명을 했다.
약속시간에 늘 10분전에 나가서 기다리는 습관이 있던 나는 그 변명들이 너무 싫었고 우리는 매번 싸웠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만나서일까, 아이들을 좋아하는 남자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다른 남자들을 못 만나본 경험부족 탓인걸까, 아님....그냥 남자 보는 눈이 없었던 탓일까...나는 이 사람과 결국 결혼을 했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
메이크업을 다 받고 드레스로 다 차려입고...식전에 신랑신부 기념사진촬영을 해야하는데 남편이 나타나질 않았다.
도우미 아줌마들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신랑 도망간거 아니야?’라는 소리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자신의 결혼식에도 늦다니...
나중에 들으니 전날 술을 많이 마셔서 늦게 일어났는데 자기가 어제 산 티셔츠가 맘에 안들어서 그것까지 바꾸러 다녀오느라 늦었단다.
늦게 일어났으면 식장에를 서둘러 와야지, 티셔츠 바꾸러 가는 건 또 무슨 경우인지...더 답답한건 티셔츠를 바꾸러 갔는데 그 매장엔 재고가 없다해서
다른 매장까지 가서 바꾸느라 더 늦었단다.
신혼여행 다녀오고 나서 바꿔도 되는 티셔츠를...그때 알아봤어야 하는데...이사람에겐 자기자신이 곧 신이고 전부라는 걸.
결혼식이 끝나고 결혼전에 친구들 모아놓고 파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뒷풀이를 또 해야한다고 우기는 남편. 기분이 상하기 싫어 뒷풀이에 참석했다.
결국 술에 만취가 되어 이성을 잃은 남편은 나 몰래 내 가방에 있던 친척어르신들께 받은 폐백비를 꺼내 친구들에게 노래방도 가고 택시타고 집에 가라며 선심을 썼다. 지금까지도 폐백때 누가 얼마를 주셨는지도 모른다. 친구들에게 수십만원을 건넸다는 것 밖에는.
그리고 신혼여행을 가기전 인천공항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우리는 신혼 첫날밤을 함께 보내지 못 했다.
만취한 남편이 벌거벗은채로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잠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겨울에 결혼을 했기때문에 혹여나 감기에 걸릴까봐 남편을 질질 끌고 침대로 옮겨놓고 나는 소파위에서 오들오들 떨며 첫날밤을 보냈다.
나의 결혼 첫날은 눈물로 시작되었다...그리고 내가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며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저 하룻밤의 해프닝으로만 착각했었다. 병신같이.
그때라도....그냥 집으로 돌아왔어야 했는데....
어제는 토요일이었고 새벽부터 골프를 치러 나간 남편은 오늘 아침이 될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밤 12시경 취한 목소리로 대리기사 불렀단 말을 끝으로 연락이 없다.
결혼 15년 참고 견디다 보면 나아지겠지 했는데 그건 절대 아니다.
혹시나 나랑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이 있다면 절대 착각하지 말아라.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절대 고쳐 쓰는게 아니다.
이글을 쓰기 시작하는 이유는 이혼소송을 준비하면서 나의 심경과 지난일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이 글은 나에 의해서 씌여지기 때문에 극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누구나 자기중심적이니까. 게다가 기억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내가 큰 사건과 사고가 있을때 적어놓은 다이어리를 펴놓고 되도록 감정에 북받치지 않게 글을 쓰고 싶다.
나는 내 15년의 결혼생활을 돌아보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다.
내 가장 젊고 아름다운 20대와 30대를 매일밤 울면서 보냈다는 것이 너무 슬프고 아깝다.
새벽 5시부터 울기 시작했더니 진이 빠진다.
오늘도 아이들 앞에서는 우리 엄마가 그랬듯이 아무일 없는 듯한 모습을 보여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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